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발렌티나 테레시코바 (문단 편집) == 상세 == 테레시코바는 [[1937년]] [[3월 6일]] 생으로 [[1963년]] 6월 16일 보스토크 6호를 타고 지구 밖으로 진출한 '''세계 최초의 여자 [[우주 비행사]]'''이다. [[공군]]에 우주비행사로 뽑히기 전에 독특한 이력이라고 해봤자 ''''낙하산 타기''''가 취미생활인게 전부였으며, 타이어 공장, 방직 공장에서 일한 평범한 여자 노동자였다. 그런데 이 취미가 우주인이 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당시 우주선은 충격 때문에 지면에 곧바로 착륙할 수 없어서 6천 미터 상공에서 비행사가 낙하산을 타고 탈출해야 했다. 한 마디로 '낙하산 타기'는 '''우주비행사의 필수조건'''이었던 것이다. [[소련]] 군부 측에선 체제 선전을 위해 테레시코바를 우주비행사로 뽑았다는 말이 있다. 사실 이것도 [[세르게이 코롤료프]]가 [[유리 가가린]]을 우주로 진출시키고 난 후에 여자를 우주로 보내자는 아이디어를 내놨다. [* 성차별을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적 관점으로부터 인식한 인식한 소련은 성평등에도 많은 정책적 관심을 기울였으며 실제로도 냉전 초기 소련의 여성인권은 전세계서 최상이었다. 소련 뿐만 아니라 전쟁 이전 남존여비 사상이 강했던 대다수의 동유럽 국가들에서 여성 인권이 크게 신장되었다.] 테레시코바를 뽑음은 프롤레타리아 계층 출신이거니와 두 살 때 [[겨울전쟁]]에서 전차장으로 싸우다 사망한 아버지가 참전군인인 점도 있었다. 이 선전효과는 아주 효과적이어서 소련은 미국에 빅엿을 먹이는 데 성공했다. 테레시코바 역시 자신의 이미지를 충분히 활용해 정계 진출에 무난히 성공했으니 지금 보면 서로 윈윈 게임인 셈. 테레시코바를 선택한 사람은 [[니키타 흐루쇼프]]였다고 한다. 경쟁자가 성적은 더 좋았지만, 테레시코바가 프롤레타리아 노동자 계급을 대표한다는 점이 주요했다고.[* 일설에는 테레시코바가 금발인 점이 주요했다는 말도 있다. 어쨌든 테레시코바의 정계 진출 이후 승승장구하게 된 것도 노동자 계급 출신이라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고 한다.] ||{{{#!wiki style="margin:-5px -10px" [[파일:external/bm.img.com.ua/6be8784064cf86d999827f3d27d99c4a.jpg|width=100%]]}}}|| || 우주복을 입은 사진 || 1962년 여자 우주비행사 모집을 공고했는데, 테레시코바도 이를 보고 응시하였다. 당시 나이는 26살에 불과했다. 1년간 훈련을 받은 뒤 63년 6월 16일 12시 30분에 소련 바이코누르 우주기지에서 보스토크 6호를 타고 우주비행에 성공했다. 비록 비행 내내 우주멀미로 고생하긴 했지만, 총 70시간 50분 동안 지구를 48바퀴 돈 뒤 무사귀환하는 데 성공하였다. 테레시코바의 우주비행시간은 '''당시 미국 남자의 우주비행기록을 전부 합친 것보다''' 길었다. 최연소 기록은 덤. 참고로 [[머큐리 계획|머큐리 세븐]]의 일원인 고든 쿠퍼(1937년 3월 6일생)는 테레시코바보다 정확히 10살 많았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RIAN_archive_159271_Nikita_Khrushchev%2C_Valentina_Tereshkova%2C_Pavel_Popovich_and_Yury_Gagarin_at_Lenin_Mausoleum.jpg]] 레닌 영묘에서 [[유리 가가린]], 파벨 포포비치, [[니키타 흐루쇼프]]와 함께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RIAN_archive_612748_Valentina_Tereshkova.jpg|width=480]] 소련 공군 정복을 입은 테레시코바 사진 (출처: Russian International News Agency) 훈장은 [[소비에트 연방 영웅]], 체코슬로바키아 노력영웅, 월남 노력영웅, [[사회주의노력영웅]]이다. 소련의 영웅으로 대대적으로 선전되었다. 소련 최고 칭호인 [[소비에트 연방 영웅]] 칭호를 받았고 [[소련 최고회의]] 의원과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의 중앙위원을 역임했으며, 1977년 엔지니어링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동료 우주비행사 안드리안 니콜라예프와 1963년 11월에 결혼하고 1964년에 딸을 낳았으나 성격차로 1982년 이혼하고 의사와 재혼했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800px-RIAN_archive_16350_Tereshkova%2C_skiing.jpg]] '''27세'''였던 1964년 모습. 우주비행을 그만둔 후에도 공군에 남아있다가 1997년 은퇴하였다. 그때 최종계급이 소장이니, 다시 말해 '''장군'''이었다.[* 다만 투스타는 아니고 원스타. 소련군은 준-소-중-대가 아니라 소-중-상-대 순으로 장성 계급이 이어진다.] 뭐 그 전에도 소련의 얼굴마담으로 많이 나섰지만, 소련 붕괴 이후엔 우주 관련으로만 많이 나섰다. 2003년 총선에서 생명러시아당 소속으로 비례대표 출마를 했지만 낙선했고, 이후로 [[통합 러시아]]에 입당해서 야로슬라블 주의원으로 재직하다가 2011년 총선에 출마해서 당선한 덕택에 국회의원으로 재임 중이다. 테레시코바가 우주비행에 성공함으로써 우주가 남자의 전유물이라는 인식이 깨졌다. 또한 여자가 우주에 장기간 체류시 일어날 수 있는 신체적 변화를 연구할 수 있는 최초의 사례이기도 했다. 테레시코바가 지구로 보낸 첫 메시지인 "여기는 갈매기(나는 갈매기)"는 강하고 자유로운 여자를 뜻하는 유행어가 되었다. 단순히 최초의 여성우주비행사 뿐만 아니라 그녀를 표현하는 수식어는 참 많다. 전세계적으로는 10번째 우주비행사였지만 의의는 [[닐 암스트롱]]에 비견될 정도. 이전까지 우주비행사들이 모두 엘리트 군인이었던 데 반해 테레시코바는 민간인에 노동자 계급 출신이었기에 체제선전용으로 그만이었다. 지구에 무사히 도착하자 당시 소련을 통치하던 서기장 [[니키타 흐루쇼프]]는 "여성은 약하지 않다." 하며 추켜세웠다. 소련은 테레시코바를 통해 누구나 원하면 가능성은 무한히 열려있다고 공산주의 체제를 선전하였고 테레시코바가 우주복을 입고 웃는 사진은 당시 소련에서는 '여성의 대명사'가 됐다. 이처럼 체제선전용이었단 한계 때문인지, 테레시코바 이후 19년 동안 여성 우주비행사는 나오지 않았다. 1982년 8월에 가서야 두 번째로 소련의 사비츠카야(Svetlana Yevgenyevna Savitskaya, Светла́на Евге́ньевна Сави́цкая)가 소유즈 T-7에 오르면서 여성 우주비행사의 역사가 다시 시작되었다. 미국은 1983년 6월 STS-6 챌린저에 [[샐리 라이드]]가 탑승하면서 여성 우주비행사의 시대를 열었다. 이후 [[미르]] EO-17에서 옐레나 콘다코바(Yelena Vladimirovna Kondakova, Елена Владимировна Кондакóва)가 여자로서는 사상 최초로 백일 이상 장기체류를 진행했고, 미국에서는 [[아일린 콜린스]]를 시작으로 [[우주왕복선]] 조종사 중에서도 여자가 배출되었다. 다만 러시아 여자 우주인 계보가 2010년대 중반까지 단 4명에 그치는 점에 대해서는 말이 좀 있는 편인데, 소련의 우주개발을 총지휘하던 [[세르게이 코롤료프]]가 초창기 선발된 여자 우주인들을 평가하면서 능력 면에서나 신체적인 한계 면에서나 공군 출신 남자들만 못하다는 의구심을 버리지 못했다고 전해진다. 또 장기우주비행이 여성의 불임을 유발한다는 연구가 있어 여성을 잘 뽑지 않는다고도 한다. 다만 해당 연구는 우주비행사를 대상으로 한 특성상 연구대상이 매우 적고, 남자 또한 성기능 장애를 호소한 적이 있다고 한다. [[파일:external/576f3cac5a41cc9347f04ff28289628775141270c38313f65cb081f7b6ab7280.jpg|width=480]] 현재는 [[통합 러시아]] 소속 국회의원으로 활동한다. [[https://mobile.newsis.com/view.html?ar_id=NISX20200311_0000950636|#]] 그리고 국회의원 활동 중 [[블라디미르 푸틴]]의 사실상 영구집권[* [[2036년]]까지]을 가능하게 하는 헌법을 개정하자고 제안하여 비판받기도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